천국에서 길을 잃다

3-2. 축제의 밤

에덴의나그네 2008. 8. 8. 13:55

3-2. 축제의 밤

 

  나름대로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을 하며 팽팽하게 긴장했던 근육이 이완되자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와 으실으실 한기까지 느끼던 형진은 계단을 따라 곧장 2층으로 올라 가더니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 침대 위에 눕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단잠에 빠져 누운지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편하게 속옷만 걸쳐 입고 자는 습관 탓에 두터운 이불을 껴안고 세상모르고 잠에 빠졌던 그는 문득 오싹하게 불어 는 냉기를 느껴 덜 깬  눈을 비비며 침대에서 일어나 어두운 실내를 두리번거리며 창이며 문을 바라보던 형진은...

 

    " 문 단속을 안 하고 잠 들었나?"

 

  침대 옆의 스탠드를 켜며 자리를 털고 부시시한 모양새로 일어 나려던 형진은 깜짝 놀라 침대를 박차고 방바닥으로 향했다.

 

    " 아니 이게 , 얘가 어떻게.....?"

 

    " 혜린아.....! 정신 좀 차려봐?"

 

  다급해진 형진은 한손으로 혜린의 어깨를 흔들다가  열린 문으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실내 공기가 싸늘해진 것을 확인하고 바람에 춤을 추는 커텐을 잡으며 문부터 닫아 걸었다. 

 

   도대체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몸도 가누지 못하고 끙끙거리며 새우잠 자듯 잔뜩 구부려 있었을 뿐 만 아니라 토해 낸 구토물이 방바닥이며 옷에 지저분하게 번져 있었고, 걸어 잠근 문 때문에 통로를 잃어버린 새콤한 알콜 냄새와 구토물에서 풍기는 역겨운 냄새가 한데 범벅이 되어 밀폐된 좁은 실내로 순식간에 배여 들었다.

 

    " 아니 얘가 집으로 가지 않고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난감해진 형진이 다급하게 실내 계단을 따라 거실로 내려가서 주방등을 켜고 걸레며 행주를 죄다 챙겨서 나오다가 잠옷 바람의 정희랑 마주 쳤다.

 

    얘들 아빠도 없는데다 저녁 일찍 잠이 든 정희가 인기척에 놀래서 자다 말고 일어났던 것이다.

 

    " 아, 별일 아닙니다...그냥 뭘 좀 흘려서....."

 

   런닝과 팬티 차림으로 걸레며 행주를 든 형진의 우스꽝스런 모습을 보던 정희가 말했다.

 

    " 아니, 뭘 흘렸길레래 한 밤중에 자다 말고 일어나서 그걸 들고 있는거니?"

 

  난처해진 형진이 부리나케 2층으로 올라가며...

 

    " 나중에 말씀 드릴테니 그냥 주무세요."

 

    " 쟤가?"

 

   청바지며 외투에 묻은 구토물을 대충 행주로 닦아 낸 형진은 외투 상의와 청바지를 힘겹게 벗겨낸  혜린을 벌떡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에구, 냄새며 이게 다 뭐냐?"

 

  미심쩍어서 따라 올라온 누나에게 기어이 들키고 말았다.

 

    " 쉿.....!"

 

    " 이왕 올라오신 김에 이것 좀 처리 해주세요."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짐작한 정희가 아래로 내려가서 당신이 입던 바지를 가져와 옷걸이에 걸어 놓더니 걸레를 들고 몇번을 오르 내리며 방바닥을 훔치고 정리를 끝내더니 창문을 절반쯤 열어 놓고 내려갔다.

 

  이미 잠은 온데간데 없이 달아 나 버렸고, 속옷 차림을 깨달은 형진은 옷걸이에 걸린 셔츠와 트레이닝복을  걸쳐 입고 의자에 걸터앉아 잠든 혜린의 모습을 측은한 듯 유심히 쳐다 보고 있다가 혼자서 실없는 웃음보를 터뜨렸다

 

    " 흐흐흐....! 

 

    " 이거 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꿈틀거리며 자던 혜린이 신음 소리를 내며 일어 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걸 지켜보던 형진이 잽싸게 침대에 붙으며 혜린의 상체를 잡아챘다.

 

    " 아 아... 토하고 싶어."

 

  책상 옆에 있던 휴지통을 냅다 가져와서 혜린의 얼굴 앞에 갖다 대며 등을 툭툭 쳤다.   

 

    " 여기가 어디야?"

 

  구토물을 다 쏟아 놓고 화장지로 입술을 훔쳐 주던 형진을 바라보며 게슴츠레 눈을 뜨고 혜린이 말했다.

 

    " ???"

 

    " 이젠 나도 못 알아보는 거야?"

 

   "아, 오빠구나...헤헤헤.....!

 

 기운이 다 빠졌는지 늘어진 웃음으로 형진의 품에 쓰러지듯 안기며 술 냄새를 확 풍긴다.

 

   " 아니, 도대체 어디서 이렇게 몸을 가누지 못하도록 술을 마시고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 온 거냐?

 

   " 오빠, 나 양치 좀 하고 싶어."   

 

   " 양치는 무슨, 물 가져 올 테니 입이나 행구고 그냥 자!"

 

   거실로 내려갔더니 정희는 구토물이 덕지덕지 붙은 옷가지들을 세탁하는 지 욕실에 들어 가 있다가 힐끗 돌아본다.

 

   " 잘 자고 있니?"

 

   " 아뇨, 깨어 났는데 양치질 하고 싶은가 봐요."

 

  욕실 사물함에서 칫솔을 하나 꺼낸 형진이 가다말고 돌아서서...

 

   " 아침 먹여서 보내게 해장국이라도 좀 끓여 주세요." 

 

정희가 허공에 주먹을 내치며 때리기라도 할 듯 시늉하다 눈을 부라렸다.

 

   "허 허, 어쩌겠어요."

 

  세탁해서 말릴 테니 아침에 입혀서 보내라."

 

   "녜.....!"

 

  가져 간 물도 마다하고 기어이 세면장에 혼자 들어가더니 아주 말끔하게 세수까지 하고 반쪽이 된 창백한  얼굴로 비틀거리며 들어 왔다.

 

   " 좀 괜찮아졌어?"

 

   " 응, 죄송해요...저 때문에 잠도 못 주무시고?"

 

   " 옷이나 좀 입지?"

 

   " 어머나.....?"

 

  화들짝 놀라는 혜린을 보다 못한 형진이 옷걸이에 걸린 누나의 바지를 건넨다.

 

   " 사람들 다 깨워 놓고 말이야...너 아침에 부끄러워서 어떻게 인사할래?

  

   " 몰라, 몰라.....! 나 어떡해?"

 

  울상을 지으며 형진의 가슴을 내리치는 혜린을 달래며 이부자리를 건넨다.  

 

   " 늦었으니까 자고 아침에 내려가서 죄송 하다고 인사 드려."

 

   " 녜, 저 졸려요."

 

  미안한 기색을 감추기라도 하듯 하품을 하던 혜린이 자리에 눕는다.

 

   " 오빠.....! 저 안아 주세요."

 

   응석부리듯 형진의 품을 파고들던 혜린은 피곤했는지 팔배게를 배고 그대로 잠이 들어 버린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긴 했으나 이미 달아나버린 잠이 올 리도 없고, 난생 처음 이성을 곁에 두고 잠을 청하려니 가슴만 콩닥 거릴 뿐이다. 고른 숨을 몰아 쉬며 쎄근쎄근 잠이 든 혜린의 측은한 모습을 처다 보던 형진은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무거운 눈꺼풀을 껌벅거리다 긴 한숨을 내 쉬었다.